【KCJFA 칼럼】목수를 지켜라ー오수란

오수란(중국 연길) 기사 입력 2017.4.23 08:00

〔KCJFA 칼럼=오수란〕

무승의 늪

은근히 기대했던 시합이었다. 하북 화하와의 선전에 힘입어 드디어 지난 시즌 연승 가도를 달릴 때처럼, 다시 한번 그 기세를 이어갈 것 같은 희망으로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결국, 아쉽게도 천진 태달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무승의 늪 속에서 연변 축구는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다.

우리 팀 경기를 하루 이틀 본 것도 아닌데 첫사랑을 하는 초보마냥 아직도 난 모든 게 서툴다. 경기 내내 긴장하고 떨리고 불안해서 어찌할 줄 몰라 했다. 현장에서 지켜볼 때도 TV로 생중계를 볼 때도 왜 이토록 온몸에 기운이 빠지는 느낌인지, 숨이 목구멍까지 컥컥 막혀오며 입술이 바짝 타오른다. 90분 내내 침침한 마음으로 무엇 마려운 강아지처럼 TV 앞을 서성이며 눈에 힘을 주고 있노라면, 경기 후엔 숟가락을 들 힘조차 남아있지 않다.

나는 그게 너무 버거워서 가끔은 전반전이 끝난 후에 TV를 꺼버릴 때도 있다. 축구는 즐기라고 있는 대중 스포츠인데 왜 연변팀 경기만은 도무지 즐길 수가 없는지, 온몸에 힘을 잔뜩 주고 고슴도치처럼 말초신경을 도사리고 있는데, 과연 나는 즐길 준비가 되어있었는지.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사랑이라는 ‘허울’과 ‘탐욕’

천진 태달 팀은 역사적으로도 우리한테는 늘 버거운 팀이었다. 그래서 역대 전적까지 애써 머리에 떠올리며 무거운 마음을 다시 잡으려 했다. 1초, 2초…시간이 흐르며 내 마음도 다시 차분해진다.

고른 호흡 소리가 느껴지며 복잡하던 머릿속도 안개 걷히듯, 서서히 그 윤곽을 잡아간다. 끝없는 자문 속에서 답은 나왔다.

바로 사랑을 빙자한 욕심

제발 올해도 슈퍼리그에 잔류해다오, 한번 멋지게 상대를 이겨다오, 우리의 자존심을 지켜다오. 나름대로 책임감 있고 지조 있는 팬이랍시고 이 정도는 팬으로서 요구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이 역시도 사랑을 빙자한 내 욕심이었음을.

우리가 언제부터 경기마다 승점을 올리고 원하는 선수들을 자유로이 찜해둘 만큼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강팀이었다고. 불과 2, 3년 전만 거슬러 올라가도 어느 축구해설자가 말했듯, 산간벽지(穷乡僻壤)의 가난하고 성적이 부진한 구단에 불과하지 않았는가.

연변축구를 드라마틱하게 그린 다큐멘터리며 국내외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우리도 어느 사이엔가 근본을 잊어버리고 있다. 연변축구에 부풀어 오른 거품을 밀어버리고 내실을 따지고 보면, 그저 축구 좀 한다고 자존심은 하늘을 찌르지만, 정작 우리 팀은, 언제 돈줄이 끊겨 다시금 희망을 버리게 될지도 모르는 가난한 시골구단에 불과하지 않는가. 그래도 지난 2년 남짓한 동안 나름 우량 스폰서인 부덕 그룹의 지원을 받으며 돈 좀 만졌다고,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국가대표급 용병들을 영입했다고 현실을 포장한 ‘허상’만 본다면, 결국 우리 팬들도 건방을 떨고 있는 것이 아닌지 싶다. 시대는 변하고 있지만, 가끔은 ‘개구리 올챙이였을 적’ 시절을 돌이키며 우리 가슴에 두 손을 얹고 곰곰이 현실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함께 열광했던 2015시즌. 그리고 우린 수박할머니와 함께 울고 웃었다. 아직도 고령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원정길을 마다치 않는 수박할머니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 ‘행복’은 어디서 시작되었고 우리가 소중히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사진=延边网)

 

집을 짓는 목수, 박태

‘쩐’과 월드 클래스 선수들이 판을 치는 슈퍼리그를 누비며 우리도 한 번쯤 큰 꿈을 꿀 수 있었던 건 결국, 故 최은택 교수님 시절의 영광을 재연시킨 박태하 감독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어느 한 인터뷰에서 지충국 선수는 “박 감독님 오시기 전 갑급 시절의 우린 정말 팀도 아니었어요.”라고 말했을 정도다. ‘one team’이 아닌 잔해들을 모아서 하나로 똘똘 뭉친 완전한 팀으로 만들고 슈퍼리그로 승격시킨 사람은 바로 박태하 감독이다.

나는 우리의 박태하 감독은, 한 명의 집을 짓는 목수라고 생각한다. 널판자 하나하나 두드려서 쪽을 맞추고 못질 하나하나에도 정성을 기울여 연변팀이라는 ‘우리만의 집’을 짓고 있는 목수 말이다. 가끔은 ‘널판자’가 이러쿵저러쿵 소일거리 찾아 헤매는 나그네들이 훈수도 두지만, 목수는 묵묵히 집을 짓는 일에 열심이다.

목수만 있다면 망치가 어떻든, 못이 어떻든, 널판자가 어떻든 아무 걱정이 없다. 목수는 언제든 집을 완성할 능력과 힘이 있으니까. 우리만의 집을 지키고 싶다면 우리 손을 잡아준, 우리에게 ‘꼭 맞는’ 목수만을 묵묵히 지켜주면 된다. 연변팀이 슈퍼리그에 있든 갑급리그에 있든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 집다운 우리 집을 만들어주고 지켜줄 수 있는 목수 한 사람이다. 목수가 굳건하면, 세상의 비바람에 부서지고 무너져도 언제든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안식처를 다시 지어줄 테니까.

 

선수들이여,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라!

선수들에게도 이젠 민족을 위한 긍지 하나만으로 경기를 뛰라고 주문하고 싶지 않다.

민족을 위하여 혹은 돈을 위하여서가 아닌, 오로지 프로로서의 자신을 위해서 뛰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들은 이제 그 누구를 위함이 아닌, 자기 자신의 프로 인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주변의 관심과 시선에 현혹되지 말고 축구선수로서의 자신의 꿈에만 집중해야 한다.

오스카, 악셀 비첼, 그라지아노 펠레와 함께 뛰는 슈퍼리그라는 무대에서 좀 더 나은 자신으로 되기 위해, 나날이 성장하는 프로축구선수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으면 좋겠다. 오로지 축구에만 매진하고 축구선수로서 좀 더 나은 커리어를 쌓아가는 과정은, 은퇴 후의 인생 속에서도 들뜨지 않고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선수들을 도와주리라 생각한다. 이는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삶의 재산이다. 민족적 자존심이라는 멍에를 잠시 벗어놓은 채, 좀 더 자신의 성공적인 커리어를 위한 축구를 해준다면, 또 한 번 중국 축구 무대에서 진정한 ‘연변호랑이’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우리와 함께 성장하는 ‘목수’를 위하여

앞서 언급했지만, 우리가 슈퍼리그에 있든 갑급리그에 있든, 결국 그보다 중요한 건, 가장 적합한 우리 집을 짓고 지켜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목수가 있느냐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늘‘축구의 고향’이란 자부심을 안고 사는 우리도 이젠,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우리 두 손으로 ‘노포(老字号)’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바로 연변팀이라는 집을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지어 갈 수 있는 ‘장인 목수’ 한번 만들어보는 거다. 돈 따라왔다가 돈 따라가는 ‘프로는 돈으로 평가받는다’는 식의 이젠 ‘쫌 식상한’ ‘노련미 장인’ 말고, ‘우리 집’을 만드는 과정에 ‘널판자’와 그 집에 머무는 이들과 함께 성장하며, 언젠가는 그 어떤 곳에서도 명품 집을 지을 수 있는 그런 장인 말이다.

ERP(전사적 자원관리)라는 개념 하나 모르던 내가 출판사 경력 12년 만에 전문편집이 되어가듯, 박태하 감독도 우리랑 함께 가는 이 길에서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노라면 언젠가는 우리 연변축구가 만든 진정한 명장으로 완성되어있지 않을까?

이젠, 숨을 고르고 견뎌내야 할 때

슈퍼리그 2년차 연변팀이 마주한 중국 최정상 무대. 가끔은 한치 앞길 내다볼 수 없는 이 변화무쌍한 ‘강호’에서 선수도, 팬들도 이젠 가장 진실한 우리 자신을 마주해야 할 때가 왔다. 넘치지도,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게 정확한 우리를 받아들여야 할 때가 왔다. 이젠 멀리도 말고 우리 앞에 놓여진 길을 묵묵히 참고 견디고 인내하며 한발자국 한발자국 걸어야 할 때가 왔다.

내게 차려질 일 년 치 행운을 내 신앙 연변축구에 바친다.

 

기사 제공:KCJFA 칼럼=오수란

사진 제공:延边网

©재일 조선족 축구협회 KCJFA

 

저작권을 존중합시다. 본 협회 컨텐츠는 상용 목적이 아니라면 어디든 전재(転載)가능합니다. 단, ❶컨텐츠 작가 이름, ❷출처(=재일 조선족 축구협회 KCJFA), ❸기사 링크(=URL)는 반드시 밝혀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