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기사①]현장르포K: 박태하와 연변, 기적 잊고 현실 앞에 서다

 

기사입력:2016.03.04
[풋볼리스트=가고시마(일본)/서귀포] 류청 기자= “올 시즌에는 지난 시즌보다 많이 질 수밖에 없다. 그 충격을 이겨내고 자신감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잔치는 끝났다. 현실이 다시 시작됐다.

박태하 연변부덕 감독은 지난해 10월의 뜨거움은 모두 잊었다. 2014시즌 갑급리그(2부리그) 최하위였던 연변을 2015시즌 우승시켰던 좋은 기억만을 남겼다. 자랑과 자부심은 이미 생각 밖으로 밀어버렸다. 박 감독은 “슈퍼리그에서도 당연히 잘 하지 않겠느냐”는 주위의 이야기에 “슈퍼리그는 완전히 다른 곳”이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지난 시즌은 지난 시즌으로 끝났다. 이제 새로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수단과 스태프의 분위기도 그랬다. 일본 가고시마와 한국 제주도에서 만난 연변은 차분했다. 몇 달 전에 봤던 들뜸은 찾아볼 수 없었다. 걱정이 넘치는 것도 아니었다. 올 시즌을 낙관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위축되지도 않았다. 박성웅 연변 단장은 “구단과 연변을 응원하는 이들 모두 기대가 큰 것은 사실이다”라면서도 “기대하는 성적은 누구나 높을 것이다. 하지만 잔류가 가장 큰 목표다. 박 감독과 선수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한다”라고 말했다.

박 감독을 둘러싼 이들은 되도록 부담을 주지 않으려 하지만, 박 감독과 연변이 놓은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한국에서 만난 많은 이들은 “올 시즌이 지난 2015시즌보다 중요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슈퍼리그에서 경쟁력을 보여야 지난 시즌의 성적이 요행이나 행운이 아니었음을 증명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부덕그룹이 5백억 원 정도를 투자한 것도 박 감독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지원하는 쪽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중요하지 않은 시즌이 어디에 있나(웃음). 부담은 없다. 지난 시즌처럼 편안하게 갈 것이다.” 박 감독은 초연했다. 그는 선수들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선수들에게 이제 되도록이면 잔소리를 하지 않으려 한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계속 들으면 잔소리가 되지 않나. 지난해에는 미팅을 일주일에 3번 했는데, 이제 1번으로 줄였다. 선수들이 잘 따라오고 있는데 잔소리하면 안 된다.”

#기대: 특별하지 않은 강함

박 감독은 선수와 코칭스태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했다. 가장 신경 쓴 부분은 구성이다. 일단 코치진을 제대로 꾸렸다. 이임생 수석코치와 김성수 골키퍼 코치를 영입했다. 감독 경험이 많은 이 코치와 박 감독보다 나이가 더 많은 김 코치를 선임했을 때, 의혹의 시선도 있었다. 박 감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코치가 감독을 5년이나 했다. 코치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손을 내밀었을 때 믿어줬다. 내가 오히려 고맙다. 김 코치님도 마찬가지다. 바로 승낙해줬다. 능력과 경험을 겸비한 이들이 도와주니 든든하다.”

선수영입에서도 박 감독과 연변은 예상과 달랐다. 부덕그룹이 연변에 500억 원 정도의 투자를 했기 때문에 연변도 세계적인 선수를 영입할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다. 박 감독은 두 명의 외국인 선수(하태균, 스티브)를 남겼고, 윤빛가람과 김승대 그리고 세르비아 대표 출신인 수비수 니콜라 페트코비치를 영입했다. 같은 승격팀인 허베이중지가 제르비뉴와 에세키엘 라베치를 영입한 것과는 다른 행보다.

“축구는 하모니다. 이름 있는 선수들을 뽑는다고 해서 잘 한다는 보장이 없다. 우리 팀에 어울리는 선수를 선택했다. 한 명 정도 뽑을 수도 있겠지만, 자칫 다른 선수들에게 위화감을 줄 수도 있다. 동료를 위해 희생하고 팀을 위해 헌신하는 선수가 필요하다.” 박 감독은 웃었다. 연변에서 두 번째 시즌을 준비하는 하태균도 마찬가지였다. 하태균은 “우리 팀은 특별하지 않아서 강하다. 선수들이 사이가 좋고, 훈련 분위기도 좋다. (윤)빛가람이와 (김)승대도 어느새 동료들과 친해졌다. 이런 부분이 그라운드에서 나올 것이다”라고 확신했다.


구단 그리고 스폰서인 부덕그룹은 이런 박 감독의 생각에 완벽하게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의문은 금새 풀렸다. 박 단장은 “비싼 선수보다 우리 팀에 어울리는 선수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박 감독도 우리 사정과 구단 재정을 생각해서 결단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믿는다”라고 말했다. 한족인 우장룡 사장도 “부덕그룹은 구단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 유명 선수를 영입해 스폰서가 부각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라고 했다.

박 감독의 생각은 선수들에게도 전해졌다. 지난 시즌 갑급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킨 연변선수들은 다른 팀들의 관심을 받았다. 슈퍼리그에서는 한 해에 자국 선수를 5명 밖에 영입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국 선수를 확보하려는 경쟁이 뜨겁다. 중국 선수들의 국내 이적료가 하늘로 치솟는 이유다. 연변 선수들에 대한 영입 작전도 컸다. 박 감독은 주축 선수들을 거의 지켰고, 조선족 출신인 지충국, 한광휘 등을 영입했다. 선수단에 생긴 신뢰가 선수들의 이탈을 막고, 영입을 도운 것이다.

상징적인 사건도 있었다. 지난 시즌 주전이었던 리훈은 다른 팀으로 이적하겠다며 연변과 재계약하지 않았다. 지난 시즌 초반 재활을 위해 한국에 2달이나 보냈던 선수였지만, 리훈은 박 감독에게 작별인사도 하지 않고 떠났다. 리훈은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베이징궈안 2군에서 훈련하다 돌아올 결심을 하고 박 감독에게 전화를 했다. 박 감독은 “네가 잘못한 일이 있으니 바로 결정하지 못하겠다. 구단과 상의하겠다”라며 선을 그었다. 박 감독은 박 단장이 리훈을 받아주자고 말하자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박 감독도 리훈을 다시 내칠 생각은 없었다.

“불쌍하지 않나. 축구밖에 모르고 큰 아이다. 주위에서 하는 말을 듣고 잠시 솔깃했을 수도 있다. 다시 받으면서 이야기했다. 모든 것을 걸라고.”

#숙제: 패배에 익숙해지는 법

연변의 가장 큰 숙제는 현실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연변은 지난 시즌 갑급리그에서 단 2패만 했다. 시즌 개막부터 21라운드까지 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팬들의 기대치도 올라갔고, 선수들의 자신감도 올라갔다. 하지만 슈퍼리그에서 연변이 서 있는 곳은 순위표 위가 아니라 아래다. 선수들도 이 현실을 머리로는 인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패배가 늘어나면 선수들이 길을 잃을 수 있다. 선수들이 가지고 있던 불안감은 자신감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슈퍼리그를 경험한 선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자신감 하락은 자칫 슬럼프로 연결될 수 있다.

박 감독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박 감독은 “모든 게 초반 싸움이다. 우리가 어느 정도 버티느냐가 중요하다. 지난 시즌에도 초반 위기를 넘기고 상승세를 탔다. 선수들에게 우리는 손해 볼 게 없다. 하고 싶은 대로 하자고 말하고 있다”면서 “선수들이 지는 것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당연히 지난 시즌보다 많이 질 수밖에 없다. 패배를 당하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다음 경기를 잡는 게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연변은 출발을 잘 해야 한다. 상하이선화와의 시즌 개막전(3월 5일, 상하이)은 어느 경기보다도 중요하다. 박 감독은 “지지 않는 경기를 해야 한다”라고 했다. 두 번째 경기가 하미레스, 조, 알렉스 테세이라를 보유한 장쑤쑤닝 원정이기 때문에 첫 경기 중요성이 더 커졌다. 상하이선화도 만만치 않다. 뎀바 바, 프레디 구아린, 오바페미 마르틴스 그리고 김기희가 버티고 있다. 박 감독은 “좋은 선수들이 많지만, 우리도 장점이 있다”라며 은근한 자신감을 보였다.

한국 선수들은 자신감은 좀 더 확실히 밝혔다. 지난 시즌 두 차례 상하이선화와 맞대결해본 윤빛가람은 “상하이선화에 좋은 선수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감도 있다. 외국인 선수들은 분명히 좋은데 무언가 느슨한 부분이 있다. 우리는 열심히 뛰고 많이 뛰는 팀이다. 충분히 공략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라고 했다. 하태균은 “준비는 잘 마쳤다.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초반부터 승점을 따야 한다”라고 했다.

#의미: 축구의 힘, 연변축구의 의미

연변은 단순히 하나의 축구팀이 아니다. 연변이 연변조선족자치주와 조선족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일본 가고시마에 있을 때 재일조선족들이 두 번이나 선수단을 방문했다. 이들은 일본에서 자수성가한 이들이다. 김치와 고기 그리고 600백만 원이나 하는 참치(다랑어)를 선수단에 선물했다. 단순히 돈이 있고, 여유로워서 도쿄에서 가고시마까지 두 번이나 왕복한 것은 아니다. 이들에게는 선수단을 방문할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


도쿄대학교에서 박사과정에 있는 홍용일 씨는 “지난해에 박 감독이 이끄는 연변이 돌풍을 일으키면서 조선족 사회에도 많은 변화 있었다”라며 “연변이 아닌 다른 도시에 사는 조선족들의 공동체는 공고하지 않았었다. 잘 모이지도 않고, 정체성 부분도 많이 흐릿해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연변이 축구로 돌풍을 일으키면서 조선족 공동체가 활성화된 지역이 많다. 일본에서도 조선족들이 축구 이야기를 많이 한다. 축구는 조선족들에게 운동 그 이상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박 감독으로 인해 한국과 연변과의 정서적인 거리도 가까워졌다고 했다. 홍용일 씨는 “한국과 연변 사이에 쌓인 오해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서로 잘 모르기 때문에, 무지 때문에 생긴 게 많다”면서 “박 감독님은 좋은 축구를 하고, 선수들에게도 잘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박 감독님 덕분에 서로를 알게 되면서 오해를 풀 수 있는 부분도 많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축구공이 가교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팬들은 박 감독이 무슨 일이 있어도 2016시즌을 연변에서 마치길 바란다. 1997년 연변오동(연변부덕의 전신)을 4위로 이끌고도 이듬해인 1998년에 경질된 고 최은택 감독처럼 대접해선 안 된다는 분위기다. 팬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에는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일희일비하지 말자. 박 감독을 믿고 응원하자’는 내용의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박 감독은 연변축구의 의미를 이해하고 발전시킬 적임자라고 믿기 때문이다.

“축구는 의외성이 많은 운동이다.” 박 감독의 말처럼 연변의 2016시즌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반등할 수도 있고, 강등권에서 힘겨운 싸움을 벌일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박 감독과 선수들 그리고 팬들은 꿈에서 내려와 현실과 싸울 준비를 마쳤다는 것이다. 준비가 전부는 아니다. 변수에도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숙제가 남았다.

사진=풋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