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기사⑦]현장르포Y]② :박태하 믿음이 만든 한국적인 팀, 연변

기사입력 2015.11.06 오전 11:33

 

두만강 북쪽에 있는 연변조선족자치주는 가깝고도 먼 곳이다. 한국인들은 조선족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것은 오해가 대부분이다. 한국말 혹은 조선말을 쓰는 미묘한 관계의 도시에서 박태하 감독은 작은 기적을 만들었다. 지난 시즌 중국갑급리그(2부 리그) 최하위에 머물렀던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연변 조선족 사회는 박태하가 만든 기적으로 들썩이고 있다. 박 감독은 축구로 조선족의 자존심을 세웠고, 동시에 연변과 한국 사이에 걸쳐 있던 오해를 일부분 지워버렸다. ‘풋볼리스트’는 그 현장을 보기 위해 연변으로 떠났다. <편집자주>

[풋볼리스트=연길(중국)] “생각도 못한 일이다”

박성웅 단장은 대전과 연변 현지에서 만날 때마다 같은 이야기를 했다. 박 단장은 올 시즌 초반 단장직을 맡으면서 박태하 감독의 기적을 물심양면으로 도운 이다. 그는 “처음에 박 감독을 모실 때는 을급리그(3부리그)로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다른 팀들이 징계를 받아 잔류하게 됐고, 그저 올 시즌에는 리그에 잔류만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승을 하게 되다니 정말 꿈만 같다. 이게 바로 기적이다”라고 했다.

현지 팬들의 반응도 박 단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포터 김파 씨는 “강등만 당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8등 정도면 매우 좋은 성적이라고 여겼다. 슈퍼리그는 정말 꿈도 꾸지 않았다”라고 말했고, 홍련화 씨는 “이 정도로 잘할 줄은 정말 몰랐다. 성적이 좀 좋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을 뿐이다. 올 시즌 상반기를 1등으로 마쳤을 때 마지막까지 이 성적을 유지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슈퍼리그를 15년 동안 기다려왔다. 뿌듯한 기분”이라고 했다.

80%가 같은 선수, 20% 변화로 우승

이들이 우승을 꿈 혹은 기적에 비유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지난 시즌 연변은 시즌 중에 감독을 두 번이나 경질하면서도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30경기에서 단 3승만을 거뒀다. 돈을 적게 쓴 것도 아니었다. 김룡 길림신문 기자는 “지난 시즌에 돈을 쓰지 않은 게 아니다. 아마 올 시즌보다 더 쓰면 더 썼지 적게 쓰지 않았다”라고 했다. 팬들도 그 부분을 알고 있었다. 김파 씨는 “사실 돈은 금년만큼은 썼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선수 변화도 매우 적었다. 지난 시즌 팀을 이끌던 2명의 선수를 슈퍼리그로 이적시켰고, 하태균을 포함해 3명의 외국인 선수를 불러들였다. 선수보강은 많지 않았다. 서포터 박미화 씨는 “팀이 전체적으로 바뀐 게 아니다. 한 80%가 바뀌지 않았다고 보면 된다”라며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보강한 선수들은 크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기존에 있던 선수들이 실력이 급상승했다. 믿기지 않는 일”이라며 웃었다.

성적만 좋아진 게 아니다. 훈련장 분위기와 경기 내용까지 모두 바뀌었다. 홍련화 씨는 “지난 시즌까지는 훈련을 너무 정색해서(딱딱하게)했다. 올 시즌에는 마치 오락처럼 훈련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여러 차례 훈련을 지켜봤는데 뭔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즐기는 것 같은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라고 했다. 박미화 씨는 “짧은 패스로 경기를 풀어가는 전술을 쓰고 있다. 조직력도 매우 좋다”라고 기뻐했다.

선수들은 이 사실 몸으로 느끼고 있다. 뿌듯해하면서 자신들로 놀랄 정도다. 사실 조선족 선수들은 예전부터 ‘한족보다 조선족이 패스를 잘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오랫동안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자존심이 세우지 못했던 것. 팀의 최고참인 골키퍼 윤광은 “팀이 단합되고 하나가 되면서 좋은 실력이 나오고 있다”라고 했다. 하태균은 “우리는 전방으로 때리는 전술을 쓰지 않는다. 짧은 패스로 만들어가는 플레이를 한다. 허베이와의 경기에서도 밀리지 않았다”라고 했다.

22일과 23일 훈련을 지켜보면서 연변 선수들의 공 다루는 실력이 예사롭지 않음을 확인했다. 박 감독은 “연변 선수들이 공을 잘 찬다”라는 필자의 이야기를 듣고 여유로운 웃음을 보였다. “오늘은 정말 못한 것이다. 경기 날(24일) 한 번 봐라. 이 친구들 기질이 있다. 우리 핏줄이 다르긴 다르다.” 박 감독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연변은 24일 경기에서 후난시앙타오를 시종일관 밀어붙여 4-0으로 승리했다. 후난은 연변의 패스를 이겨내지 못했다.

박 감독을 축하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한 연변조선족자치주의 한 검사는 “중국의 56개 소수민족 중에 조선족이 축구를 가장 좋아하고 실력도 가장 뛰어나다. 박태하가 우리 자존심을 세웠다”며 축배를 들었다.

기적의 씨앗은 믿음, 비료는 기본

연변의 기적은 기적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박 감독은 1편에서 언급한대로 오자마자 선수들의 밀린 임금을 해결했다. 이어 손을 댄 부분은 식사시간이었다. 박 감독은 선수들이 밥을 제대로 먹지 않는 것에 주목했다. 영양관리가 중요한데 그런 문화가 없는 실정이었다. 게다가 선수들이 밥을 먹으면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것도 고치려 했다.

이어 박 감독은 구단에 두 가지를 더 요청한다. 하나는 원정숙소다. 박 감독은 구단 재정이 허락하는 선에서 가장 좋은 호텔을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중국은 땅이 크기 때문에 이틀 전에 원정을 떠난다. 구단은 박 감독의 요청을 바로 수용했다. 다른 하나는 임금과 수당을 밀리지 않게 지급해달라는 것이다. “돈을 주더라도 제때 줘야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제대로 할 수 있다”라고 구단을 설득했다.


중요하다면 중요한 일이지만, 당장 성적을 내야 할 신임 감독이 한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손님이 짜장면을 빨리 달라는데 주방장이 밀가루 반죽을 치대기 시작한 셈이다. 다들 어떤 선수를 기용하고 어떻게 최상의 조합을 만들어내는데 골몰하고 있을 때, 박 감독은 그림이 아니라 배경을 그리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박 감독은 선수들이 잘 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집중했고, 선수들에게는 프로선수로서의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주문했다.

”너희들이 얼마나 어렵게 자랐는지를 돌아봐라. 이렇게 프로축구선수로 살 수있는 게 얼마나 행복하냐. 그런데 지금 몇 년만 더 열심히 하면 행복의 크기는 엄청나게 커진다.”

지난해 12월 거제도 전지훈련에서 한국 내셔널리그 소속 팀들에게 축구용어로 ‘팽팽 돌아’갈 때, 주위에서 보던 축구인들은 모두 우려를 표했다. K리그도 아니고 내셔널리그 팀보다 경기력이 떨어지는 팀을 데리고 갑급리그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당시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본 한 축구인은 “정말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박 감독이 1년 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리라 예상했다”라고 말했다.

이런 주위의 걱정에도 박 감독은 “선수들의 기량은 괜찮다”라고 긍정적이었다. 선수들에게 채찍이 아니라 당근을 줬다. 박 감독은 “우리 아이들이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선수들은 장점도 있다. 배운 것이 실제로 운동장에서 나오면 절대로 잊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했다. 박 감독은 어려운 것을 주문하지 않았다. 공을 주면 움직여라, 보이는 곳에 패스를 해라, 협력수비를 해라, 상대가 공을 제대로 차지 못하게 압박해라. 이런 게 대부분이었다.

박 감독은 선수들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줬는데, 그 완벽한 예가 하태균이다. 하태균은 수원삼성에서 2015시즌을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빛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하태균 자신도 “기회를 잡기가 정말 어려워 보였다”라고 말할 정도. 박 감독은 하태균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하태균은 최고의 스트라이커이고, 기회를 계속해서 주겠다고 했다. 하태균은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라며 박 감독의 손을 잡았다. 결과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다.

“결국 마음의 문제인 것 같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편안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박 감독님은 경기하기 전에도 많은 주문 보다는 하고 싶은 대로 편하게 하라고 하신다. 그렇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골 넣으면서 자신감을 얻었고, 마인드가 바뀌었다.” (하태균)

박 감독과 선수 그리고 구단이 조금씩 신뢰를 쌓기 시작하면서 팀 분위기는 생각보다 빨리 바뀌었다. 6년 동안 연변을 취재 했던 김룡 길림신문 기자는 팀 분위기의 변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전의 몇몇 감독들은 선수들에게 ‘왜 이렇게 공을 못 차냐’라고 윽박지르는 일이 많았다. 선수들은 주눅이 들었다. 그런데 박 감독은 그렇지 않았다. 선수들을 존중하는 말을 했다. 팀 분위기가 조금씩 좋아졌다. 선수들도 제대로 보상을 받으며 뛰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하태균도 한 마디 거들었다. “선수들이 요즘에 차에 관심이 많다(웃음).”

갑급리그에서 가장 한국적인 팀, 연변

연변은 갑급리그에서 가장 짜임새 있는 공격을 펼치는 팀이다. 외국인 공격수에 의존하지 않고 짧은 패스로 공격을 이끈다. 결정력도 좋았다. 하태균은 26골을 넣으면서 득점왕과 MVP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연변이 올 시즌 성공을 거둔 가장 큰 원동력은 수비다. 연변은 단단한 수비가 있었기에 마음 놓고 공격을 펼칠 수 있었다. 연변은 올 시즌 30경기에서 24골을 내줬다. 리그 최소실점 2위다.

“연변은 갑급리그에서 가장 한국적인 팀이다.” 연길인민경기장에서 만난 연변의 비디오분석과 김혁중 씨는 연변의 성공비결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 지도자들은 중국 지도자들에 비해 수비조직력에 신경을 더 쓰는 편인데, 박 감독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특히 박 감독이 가장 집중한 부분은압박이다. 박 감독은 “30cm만 더 상대에게 다가가면 상대가 더 어려워진다”라고 수차례 말했다. 하태균은 “감독님이 마치 세뇌를 하듯 이야기했다”라며 웃었다.

수비의 힘은 개막전에서부터 힘을 발했다. 갑급리그에서는 당해 승격팀이 홈 경기를 치를 때 상대를 고를 수 있는데, 승격팀인 지앙시리앙셩은 가장 만만해 보이는 연변을 선택했다. “우리를 얕 본거지. 잘 됐다고 생각했다.” 박 감독의 자신감은 현실이 됐다. 연변은 1-0으로 승리를 거뒀다. 연변은 난리가 났었다. 팬들은 당시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찡하다. 홍련화 씨는 “이길 거라고 생각도 못했었다”라며 두 손을 모았다.

하태균은 팀이 완전히 바뀌고, 선수들이 스스로의 변화를 느낀 게 5라운드(4월 19일) 북경이공대학과의 원정 경기였다고 했다. 한 명이 퇴장 당한 상황에서 4골을 넣으며 승리(4-2 승)했는데, 그 이후로 팀이 달라졌다고 했다. “경기가 끝나면 혁중이 형이 개인별로 경기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동영상을 편집해 나눠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선수들이 이동할 때 그것만 보고 있었다. 더 발전하고 싶어서, 더 잘하고 싶어서 동영상에 집중하고 있었다.” 믿음을 주고, 그 믿음을 돌려 받고. 잘 되는 집은 믿음이 돌고 돈다. 연변도 그랬다.

배가 순풍을 맞이하는 순간, 구단에서는 조그만 ‘소동’이 있었다. 박 감독이 선수단에게 휴식을 너무 많이 주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박 감독은 경기가 끝나면 그 다음날 오전에 회복훈련을 시킨 뒤 선수들에게 휴가를 줬다. 이 휴가는 이틀 뒤 오후까지 이어졌다. 박성웅 단장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내 상식에서는 운동원(선수)들은 매일 운동을 하는 게 정상이었다. 불안하기도 했는데, 감독님이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말하며 웃었다.

”감독님이 선수들에게 ‘내가 훈련을 많이 안 시킨다고 불안해하지 마라. 훈련량은 경기장에서 보여주면 되고, 나머지는 회복한다고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었다.” (하태균)

정답은 없다. 각자의 길이 있을 뿐


신뢰를 주고, 그 결과를 돌려받는 것은 이상적인 관계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믿음을 주고 기다리기만 하는 이들을 ‘바보’라 한다. 믿음을 주고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박태하가 연변에서 성공을 거두고도 손사래를 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는 연변에서 몇 차례나 “결과가 좋아서 그렇지 이게 정답은 아니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자신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운이 좋았다는 것이다.

그가 걸어온 인생을 보면, 이게 일시적인 운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박태하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이들은 그를 “의리의 사나이”라고 한다. 포항에서 은퇴할 때 “포항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며 다른 팀들의 영입제의를 뿌리친 일화는 여전히 포항팬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20년 가까이 박 감독과 인연을 맺고 있는 국승하 씨는 “박 감독은 선수 시절부터 실력도 실력이지만 다른 선수들을 다독이고 리드하는 모습이 멋졌다.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매사에 진실되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싶다”라고 했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다. 박 감독은 연변으로 오기 전 약 2년 동안 허정무거스히딩크재단 유소년 코치로 일했다. 국가대표팀, FC서울 수석코치로 일했던 박 감독은 스스로 봉고차를 몰고 풋살장을 대관하며 아이들을 가르쳤다. 국승하 씨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한다. “형님은 더 좋은 곳에서 지도하셔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묻자 ‘그건 네 욕심이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박 감독은 그런 사람이다.” 박 감독은 웃으며 “돈 안 냈다고 훈련장에서 쫓겨나기도 했지”라며 “당시에 많은 것을 배웠다”라고 말했다.

“대표팀도 해보고 FC 서울도 해봤는데, 내가 별다른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팀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물 흐르는 대로 살려고 했다. 물론 가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내가 가르친 부분을 기억하고 변화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많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무엇을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국가대표팀 수석코치에서 유소년 코치가 되는 경험을 했던 박 감독은 연변 선수들과 연변 문화를 상대적으로 더 존중할 수 있었다. 무엇이든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 감독은 재계약을 할 때도 많은 이들이 예상하지 못한 방법을 택했다. 우승이 결정되기 바로 전날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오히려 구단을 닦달했다. 우승을 한 뒤 협상테이블에 앉으면 분명히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할 수 있지만, 그 가능성을 스스로 닫은 것이다. “밀당을 하는 게 싫다. 손해도 내 팔자”라는 이유였다. 연변 구단과 연변 사람들은 박 감독의 마음 씀씀이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박 감독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축구뿐 아니라 모든 일에 정답은 없다. 다만, 각자가 만든 고유한 길이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그 길을 가리켜 정답 혹은 성공이라고 한다. 박태하는 가장 한국적인 축구를 들고, 선수들과 마음을 합쳐 하나의 길을 만들었다.

“1년 동안 내가 팀을 만들었다. 이 친구들의 장점과 잠재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도 나다. 그런데 내가 1년 만에 떠난다면 내게도 손해다. 아까워서 떠날 수가 없었다.” (박태하)

3편에서 계속